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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카투사 시절

카투사 헌병 근무 장단점

by hooper 2021. 3. 20.

안녕하세요 카투사로 군 복무했던, 영시언(영어, 시험이 아니라 '언어'입니다)입니다. 이전에 카투사에 대한 다른 포스팅도 12개 정도 해놓았으니 많이 보시고 가시기 바랍니다.

 

제 보직은 헌병이었습니다.

 

미군 헌병대 상황실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포스팅을 시리즈로 작성해보려합니다. 그당시 근무를 하며 카투사들끼리 다음 근무자에게 전달할 내용들을 적어놓은 워드 파일을 최근 발견했거든요. 서로 잡담을 하기도 했더군요. 제가 후임들에게 쿠사리줬던 내용도 있고...ㅎㅎ

 

 

제가 복무했을 당시(2000년대 후반) 헌병대 상황실은 그렇게 크지 않은 공간이었습니다. 의정부 미군 부대가 워낙 작기도 했고요. 

 

어림잡아 5~6평 정도 되는 공간을 컴퓨터와 라디오(무전기)가 있는 사무실 공간, 총과 총알을 보관하는 공간,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나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Sworn Statement(진술서)를 받는 공간으로 나누어 썼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진 출처

 

사무실에는 Desk Sergeant와 Desk Clerk 두 명이 쓸 수 있는 컴퓨터 두 대와 전화기 두대, 무전기 두대가 있었습니다. 무전기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손으로 들고 쓰는 무전기가 아닌 책상에 놓을 수 있는 스탠드형 무전기였습니다. 버튼이 있어서 그 버튼을 누르고 말하는 식이었죠.

 

 

카투사들은 보통 대화할 때 한국어로 말하기 때문에 미군들이 자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게끔 영어를 한국어로 바꾼 용어들을 쓰곤 합니다. 저희 헌병대 상황실 근무 카투사들끼리 썼던 용어 중 하나는 '책상 병장'이었습니다. 위에 적어놓은 Desk Sergeant을 한국말로 바꾼 거였죠.

 

제가 근무했을 당시에는 책상 병장 3명, 카투사 4명이 돌아가며 근무를 했습니다. 카투사들끼리 대화에서 책상 병장 3명을 구분해서 말해야 할 때는 그 병장의 이름을 한국어로 바꾸거나, 그 병장의 특징을 잡아 이야기 했습니다.

 

제가 입대 초반에 같이 근무했던 미군들은 Last Name(성)이 Wise, Turza, Cross였습니다. 그래서 한국말로 이들을 부를 때는 '지혜', '영감', '십자가'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부르면 미군 당사자가 같은 공간에 있어도 자기 얘기를 하는지 못알아듣기 때문에 자주 저렇게 부르곤 했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아, '영감'이라고 부른 이유는 Turza에 해당하는 한국말이 없어서 그 책상 병장의 특징을 잡아서 불렀기 때문입니다. 이 미군이 나이가 좀 많았고 뱃살도 많이 나왔고 운동도 잘 못했기에 '영감'이라는 별명을 얻었었네요. '늙은 병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네요. 저 미군은 이름의 발음을 한국어로 그대로 옮기면 '털자'였기에 카투사들끼리 (비)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뭘 털자는 거야?'이러면서 말이죠.

 

헌병대 상황실에서 근무하며 가장 흔히 겪었던 사건들은 '술취한' 미군들 관련 사건이었습니다.

 

음주 측정 모습, 저 미군은 공군이군요

 

↑ 사진 출처

 

 

부대 내에 식당이 있는데 그 식당에서 대낮 12시에 미군이 취해서 뻗어 있어서 패트롤(차 타고 순찰 돌며 실질적인 일을 하는 미군과 카투사 헌병들을 지칭하는 말)이 가서 처리한 일부터, 의정부역 앞에서 미군이 술에 취해 발가벗고 있다는 한국 경찰의 연락을 받고 패트롤이 출동한 일 등... 술 관련 사건은 너무나도 흔했습니다. 큰 사건으로 취급받지도 못했죠. 역시 술 관련 문제는 만국 공통입니다.

 

하지만 가끔 얌전히 술에 취한 미군 말고도 소동을 일으키는 미군들도 있었는데요. 술취한 뒤 갬성이 폭발해 자기 고향(미국)이 그립다며, 우울하다고 무기고 문을 잠그고 자살하겠다고 해서 소동을 일으킨 미군도 있었고 (다행히 실제로 자살까지 가지는 않았습니다), 만취한 뒤 끌려간 한국 파출소에서 난동을 부리며 파출소 바닥을 자신의 토로 가득 적신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진 출처

 

이렇게 적다보니 카투사 헌병은 미군의 가장 안 좋고 어두운 모습을 보게 되는(볼 수 있는?) 보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건 카투사 헌병 근무의 단점인 것 같고, 또 밤낮 가리지 않고 때로는 밤을 새며 일해야 한다는 것, 남들 쉴 때 일해야 한다는 것도 단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반대로 장점은 미군과 일대일 또는 일대이로 계속 달라붙어 근무를 하기 때문에 노력을 좀 하면 영어실력을 확 늘릴 수 있는, '실전 영어회화 과외(?)'가 되는 기회라고도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글이 길어졌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또 다른 카투사 헌병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자주 찾아와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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